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영성)/통일 과정 (문단 편집) === 4차 침공 === 진왕 정 15년, 기원전 232년 (조 유목왕 4년) 진나라는 다시금 대군를 일으켜 군사를 양로로 나누어 남로군은 업성(鄴城)에 집결시키고, 북로군은 태원(太原)에 집결시켜 남북에서 한단을 협공해 일거에 멸망시키고자 했다. 태원에서 출발한 북로군은 지금의 산서성 양곡현(陽曲縣) 부근인 낭맹(狼孟)을 점령한 다음 태항산을 넘어 계속 진격하여 지금의 하북성 평산현(平山縣) 남쪽의 번오(番吾)를 공격했다. 진나라가 침공하자 조 유목왕 천(遷)은 이목을 불러들여 대장으로 삼았다. 당시 유목왕에게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조나라에는 그해 가뭄이 와 농지는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농작물이 아예 죽어버려 곡물을 수확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진나라의 잦은 침공으로 국내는 혼란스러웠다. 기근이 덮친 데다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계속된다면 조나라의 통치체계에도 균열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유목왕은 이목에게 첫번째 전투에서 되도록 빠른 결전을 내 승리하여 전쟁을 오래 끌지 않도록 요청했다. 이목은 남수북공의 계획을 세우고, 북로군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승리한 후에 남로군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사마상에게 업을 지켜 남로군을 막게 하고 이목은 주력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내달아 진군을 공격했다. 잇다른 회전에서 북로군을 번오(番吾)에서 격퇴[* 이를 '번오 전투'(番吾之戰)라 한다.]하고 진군이 후퇴하게 한 다음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남하하여 남로군과 조우하였다. 북로군이 이목이 이끄는 조군에 의해 패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남로군도 잇달아 퇴각하게 되어 진나라의 제4차 조나라 침공전이 끝나게 되었다. 이목이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조나라의 손실도 막대했으며 인력, 물자의 부족으로 인해 추격전을 펼칠 수 없어 진군을 섬멸하지는 못했다. 거의 매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온 진나라로 인해 물적, 인적 자원의 소모가 막심하여 조나라는 도저히 홀로 진나라의 침공을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초나라와 위나라는 국력이 약화되었고, 연나라와 조나라는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에, 제나라의 인적, 물적 지원을 뒷받침해야만 비로소 진나라에 맞설 수 있었다. 조나라는 사신을 파견하여 제나라와의 동맹을 도모했지만 이런 조나라의 로비 행위를 알아챈 진나라는 이를 와해시키기 위해 즉시 사람을 보내 제나라 조정에 수만에 달하는 황금을 뿌렸고, 성사될 뻔한 제나라와 조나라의 동맹을 무산시켜 조나라를 고립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